2009년 07월 02일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교회의 직무유기
기독교단상
신앙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의 글들을 의외로 많이 보게 된다.
링크된 Lena님 역시 오랜시간 진중하게 고민했었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작 '교회'라는 현장속에서 부딛히는 가장 중요한 고민들은 아마도 무엇보다 성경속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기적같은 사건들과 사람들의 기적같은 일들에 대한 증언(이를 '간증'이라 한다.)들과 성경을 토대로 설파하는 진리와는 괴리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이중적 모습으로 인한 실망감 등이 아닐까 여겨진다.
기독교의 테두리 바깥에서 보는 시선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이 이상한 종교를 인정하든 안하든 그건 지극히 개인의 자유지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기본을 갖추는게 사람된 도리가 아닐까 여겨진다.
애초에 Lena님이 글을 쓰게 된 것은 허지웅님의 글 <오래된 거짓말>이란 글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짧게 시크한 듯 써내려간 그 글은 애초에 기본이 되지 못한 무책임한 글이다.
종교란 마루 宗, 가르칠 敎, 즉 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이 되고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가르침이다.
그것이 기독교든 불교든 혹은 조로아스터교든 인간의 평소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종교라면 자기가 믿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거짓말이다 아니다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독교는 '신학'이라는 학문적 체계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신앙적 경험(체험)이 같은 무게감을 가지고 지금도 꾸준히 형성되어가고 있는 종교다.
그저 자기가 못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저거 거짓말이야~ 하고 세상에 떠들만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개인의 판단은 개인의 자유다.
자신이 믿지 못하겠으면 못믿겠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나는 못믿겠다." 와 "저건 거짓말이다."는 결코 같은 말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종교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대놓고 모욕해버리면 당연히 그 종교를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한 순간에, 그 짧은 한마디 말로 생각없는 머저리로 만드는(자신이 원했든 아니했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혼자 생각만할 뿐이 아니라면, 그저 친구들과 한잔하는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허지웅'이라는 유명한 블로거의 포스팅 내용이 이런 거짓말이 어쩌고저쩌고 한다면, 불특정 다수가 수시로 드나드는 그런 곳에 게시한 내용이라면 무게감과 파장은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오해중의 하나는,(이는 비기독교인들의 오해 역시 마찬가지다.)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라는 개념의 혼돈에서 오는 출발선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원죄란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된 사건으로 인하여 그 죄가 유전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왜 내가 지은죄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인류의 조상이 지은 죄 때문에 나에게 죄인이란 굴레를 씌우는가...
그러나 이는 육신의 유전, 즉 '유전자'와 혈액형의 유전이 아니라 '영혼'의 유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원죄의 결과는, 쉽게 얘기하자면,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일에 그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선악과 사건이 있기 전에는 오직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자마자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 자신이 되어버렸다는 불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되었다"하는 구절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 선(善)은 오직 하나님, 조물주이신 神 자신뿐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 신의 영역에 손을 뻗치고 선악을 판단함에 있어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라 인간, 그것도 오직 자기 자신만이 기준이 되어 오늘날 인간의 사회가 평화와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증오가 같이 공존하게 된 사건이 되기도 한다.
이 원죄의 개념은 어쩌면 기독교의 진리에 접근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불행히도 오늘날의 기독교회들이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혹은 못하는) 문제점이 있기도 하다.
이는 교회가 그 주된 기능을 상실한 죄이자 목회자들의 직무유기와도 같은 죄가 같이 저지른 잘못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중요한 오해는,
인간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그 믿음에 대한 댓가로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고 또한 인간이 그 상에 대한 보답으로 교회에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는 등의 상호보상적인 관계로 잘못 생각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사실 그동안 많은 기독교회들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복'이란 개념을 자꾸만 구체적인 물질적 보상에만 촛점맞추어 이제껏 사람들을 혹세무민한 잘못도 분명 크다.
그러나 조금만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이것이 얼마나 큰 오해인지 금방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거짓말이란 이런게 진짜 거짓말이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교회에 봉사를 하고 십일조도 충실하게 내면 더 많은 수입을 얻고 자식들은 좋은 대학에 가게되고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차를 탈 수 있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하는데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십일조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오랫동안 교회에도 다녔지만, 십일조도 꼬박꼬박하고 봉사도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힘겹게 사는 사람을 보며 이 관계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약해서 아직도 저런~'하고 엉뚱한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결코 십일조 많이 하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한다고 더 사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덜 사랑한다고 결코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애초에 아버지라고 고백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돈 많이 벌어다 바치면 사랑하고 돈 많이 안벌어오면 미워하겠는가?
(혹시 사람들중에는 그런 아버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모든 아버지의 원형이다.)
인간은, 당장 예수를 믿든 안믿든, 헌금을 바치든 안바치든, 교회의 일에 열심히 참여를 하든 무관심 하든 그 자체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존재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다.
종교를 떠나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다.
어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작은 아들이 어짜피 물려받을 유산 미리 달라하여 그 재산들고 나가 허랑방탕하게 흥청망청 쓰며 살다가 거지꼴이 되어 돼지 먹이로나 주던 쥐엄열매를 줏어먹다가 차라리 아버지의 집에서 종으로 사는게 낫겠다 싶어서 그 아버지를 다시 찾아온다.
그때, 그 아버지는 그 작은 아들에게 너 왜 말 안들었니? 그 재산 다 어디 썼니? 너같은 자식은 종이나 다름없어..
이런 자질구레한 말들 단 한마디도 없이 그저 달려가 껴안고 입을 맞추고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며 잃었던 아들을 되찾았다며 무조건 기뻐한다.
이렇듯, 성경에서 말하고있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 아무런 조건없이 우리의 존재자체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 것이다.
위에 예로 든 두가지 문제는 현재 한국 기독교회의 가장 중요한 폐단이자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를 두고 기독교회가 참 잘한다고 얘기 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다만, 현재 오해되고 있는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고민없이 쉽게 얘기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나역시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한국의 기독교회들이 정치적으로 잘못된 행보를 보이며 세상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받으며 교회가 교회로서 제역할 하지 못하는데 대해 무척 안타깝고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한 사람이다.
평소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뜬금없이 '개독걷혀~ㅋㅋㅋ'하면서 장난질 하는 찌지리들도 분명 있을 것으로 알면서도 굳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교회의 잘못에 대해 욕을 한다면 그렇구나... 생각할 수 있다.
혹은, 기독교인으로서 당신들은 왜 그렇게 탐욕스럽고 권력앞에 무력한가...고 책임을 묻는다면 역시 겸허하게 받아들일 생각도 있다.
다만, 정확하게 알지 못해 오해하는 일에 대해 쉽게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 또한 같이 있기 때문이다.
osado
신앙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의 글들을 의외로 많이 보게 된다.
링크된 Lena님 역시 오랜시간 진중하게 고민했었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작 '교회'라는 현장속에서 부딛히는 가장 중요한 고민들은 아마도 무엇보다 성경속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기적같은 사건들과 사람들의 기적같은 일들에 대한 증언(이를 '간증'이라 한다.)들과 성경을 토대로 설파하는 진리와는 괴리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이중적 모습으로 인한 실망감 등이 아닐까 여겨진다.
기독교의 테두리 바깥에서 보는 시선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이 이상한 종교를 인정하든 안하든 그건 지극히 개인의 자유지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기본을 갖추는게 사람된 도리가 아닐까 여겨진다.
애초에 Lena님이 글을 쓰게 된 것은 허지웅님의 글 <오래된 거짓말>이란 글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짧게 시크한 듯 써내려간 그 글은 애초에 기본이 되지 못한 무책임한 글이다.
종교란 마루 宗, 가르칠 敎, 즉 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이 되고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가르침이다.
그것이 기독교든 불교든 혹은 조로아스터교든 인간의 평소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종교라면 자기가 믿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거짓말이다 아니다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독교는 '신학'이라는 학문적 체계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신앙적 경험(체험)이 같은 무게감을 가지고 지금도 꾸준히 형성되어가고 있는 종교다.
그저 자기가 못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저거 거짓말이야~ 하고 세상에 떠들만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개인의 판단은 개인의 자유다.
자신이 믿지 못하겠으면 못믿겠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나는 못믿겠다." 와 "저건 거짓말이다."는 결코 같은 말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종교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대놓고 모욕해버리면 당연히 그 종교를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한 순간에, 그 짧은 한마디 말로 생각없는 머저리로 만드는(자신이 원했든 아니했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혼자 생각만할 뿐이 아니라면, 그저 친구들과 한잔하는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허지웅'이라는 유명한 블로거의 포스팅 내용이 이런 거짓말이 어쩌고저쩌고 한다면, 불특정 다수가 수시로 드나드는 그런 곳에 게시한 내용이라면 무게감과 파장은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오해중의 하나는,(이는 비기독교인들의 오해 역시 마찬가지다.)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라는 개념의 혼돈에서 오는 출발선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원죄란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된 사건으로 인하여 그 죄가 유전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왜 내가 지은죄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인류의 조상이 지은 죄 때문에 나에게 죄인이란 굴레를 씌우는가...
그러나 이는 육신의 유전, 즉 '유전자'와 혈액형의 유전이 아니라 '영혼'의 유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원죄의 결과는, 쉽게 얘기하자면,
선과 악을 판단하는 일에 그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선악과 사건이 있기 전에는 오직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자마자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 자신이 되어버렸다는 불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되었다"하는 구절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 선(善)은 오직 하나님, 조물주이신 神 자신뿐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 신의 영역에 손을 뻗치고 선악을 판단함에 있어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라 인간, 그것도 오직 자기 자신만이 기준이 되어 오늘날 인간의 사회가 평화와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증오가 같이 공존하게 된 사건이 되기도 한다.
이 원죄의 개념은 어쩌면 기독교의 진리에 접근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불행히도 오늘날의 기독교회들이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혹은 못하는) 문제점이 있기도 하다.
이는 교회가 그 주된 기능을 상실한 죄이자 목회자들의 직무유기와도 같은 죄가 같이 저지른 잘못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중요한 오해는,
인간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그 믿음에 대한 댓가로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고 또한 인간이 그 상에 대한 보답으로 교회에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는 등의 상호보상적인 관계로 잘못 생각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사실 그동안 많은 기독교회들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복'이란 개념을 자꾸만 구체적인 물질적 보상에만 촛점맞추어 이제껏 사람들을 혹세무민한 잘못도 분명 크다.
그러나 조금만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이것이 얼마나 큰 오해인지 금방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거짓말이란 이런게 진짜 거짓말이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교회에 봉사를 하고 십일조도 충실하게 내면 더 많은 수입을 얻고 자식들은 좋은 대학에 가게되고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차를 탈 수 있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하는데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십일조 열심히 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오랫동안 교회에도 다녔지만, 십일조도 꼬박꼬박하고 봉사도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힘겹게 사는 사람을 보며 이 관계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약해서 아직도 저런~'하고 엉뚱한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결코 십일조 많이 하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한다고 더 사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덜 사랑한다고 결코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애초에 아버지라고 고백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돈 많이 벌어다 바치면 사랑하고 돈 많이 안벌어오면 미워하겠는가?
(혹시 사람들중에는 그런 아버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모든 아버지의 원형이다.)
인간은, 당장 예수를 믿든 안믿든, 헌금을 바치든 안바치든, 교회의 일에 열심히 참여를 하든 무관심 하든 그 자체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존재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다.
종교를 떠나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다.
어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작은 아들이 어짜피 물려받을 유산 미리 달라하여 그 재산들고 나가 허랑방탕하게 흥청망청 쓰며 살다가 거지꼴이 되어 돼지 먹이로나 주던 쥐엄열매를 줏어먹다가 차라리 아버지의 집에서 종으로 사는게 낫겠다 싶어서 그 아버지를 다시 찾아온다.
그때, 그 아버지는 그 작은 아들에게 너 왜 말 안들었니? 그 재산 다 어디 썼니? 너같은 자식은 종이나 다름없어..
이런 자질구레한 말들 단 한마디도 없이 그저 달려가 껴안고 입을 맞추고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며 잃었던 아들을 되찾았다며 무조건 기뻐한다.
이렇듯, 성경에서 말하고있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 아무런 조건없이 우리의 존재자체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 것이다.
위에 예로 든 두가지 문제는 현재 한국 기독교회의 가장 중요한 폐단이자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를 두고 기독교회가 참 잘한다고 얘기 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다만, 현재 오해되고 있는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고민없이 쉽게 얘기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나역시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한국의 기독교회들이 정치적으로 잘못된 행보를 보이며 세상의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받으며 교회가 교회로서 제역할 하지 못하는데 대해 무척 안타깝고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한 사람이다.
평소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뜬금없이 '개독걷혀~ㅋㅋㅋ'하면서 장난질 하는 찌지리들도 분명 있을 것으로 알면서도 굳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교회의 잘못에 대해 욕을 한다면 그렇구나... 생각할 수 있다.
혹은, 기독교인으로서 당신들은 왜 그렇게 탐욕스럽고 권력앞에 무력한가...고 책임을 묻는다면 역시 겸허하게 받아들일 생각도 있다.
다만, 정확하게 알지 못해 오해하는 일에 대해 쉽게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 또한 같이 있기 때문이다.
osado
# by | 2009/07/02 05:57 | 살며 사랑하며 | 트랙백(1)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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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은 기본적인 스탠스가 틀리지용
0. 일단 기독교라고 하면 천주교 + 개신교 다 섞어놓은 이미지로 받아들이시는듯 하니 공공의 적이 되어가는 개신교를 명확히 지칭하겠습니다. 똑같은 예수를 믿는데 천주교는 사랑받고 개신교는 개취급 받으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 보시기에 착잡하시겠습니다그려. 이미 이전부터 몇번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것 같은데, 글쎄 개신교인은 비개신교인과 기본적인 스탠드가 틀리다니까요. 일단 비개신교인이 가지고 있는 개신교에 대한 제일 큰 불만은 아마 이거겠죠 ......more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현재 우리의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다만 지금껏 자신에게 들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속단하신 것 뿐입니다.
그런 소수의 노력과 힘으로 그 기독교의 정의가 지금까지 세워져 왔습니다.
일제시대때 친일안하고 살아남은 사람있냐고 투덜거린 조선일보식 논리처럼 현재의 한민족 전체가 친일후손입니까?
친일하던 주류와 함께 비주류, 이단아 취급받던 소수의 희생도 분명 있어왔지만 얼마나 많이 가려져있고 소외되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현실이고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허지웅씨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고 제가 평소에 가진 생각입니다만, 매우 쉽게 '그건 거짓말이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애초에 크리스트교 신자들이 '이건 진리다'라고 외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이건 크리스트 교인으로서 내 개인의 믿음일 뿐이다' 정도만 되었어도, '미안한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가 될 테지만요. 거짓말이라고 단정하는 것을 비난하기에 앞서 진리를 너무 쉽게 참칭하는 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신앙(종교)과 진리 정도는 구별합시다. 종교건 신앙이건 신학이건 그것들은 다 개인적인 호오의 대상에 불과합니다.
그걸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지요. 그런 걸 구라라고 안하면 뭐가 구라일까요?
제가보기엔 그 일부가 오히려 한 80% 이상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더 어릴적에 교회내부에서 "감히" 목사님께 오사도님께서 쓰신 논조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가
괘씸죄로 청년부에서조차 따당하고 나왔답니다....
또 크리스트교쯤 되면 종교 자체에 악의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결국 신자들이 보여주는 여러 문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니까요.
다만, 유독 개신교 신자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교리 자체에 배타적인 면, 교조적인 면 등이 강하게 드러나며, 구체적인 종교 공동체나 종교적 방법론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와 불쾌감을 주기 쉽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심지어 이런 말을 들으면 잘못했다기보다는 박해받는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 많지요)은 동의하실 수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문제긴 하지만 개신교 자체가 그 인간의 문제점을 더 추하게, 많이 드러내며,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피해를 끼치기 쉽게 되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하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냐는 거지요.
말이 장황해졌습니다만, 일부의 문제, 한국 교회 몇몇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한국에 퍼진 개신교 자체에서, 자기들의 '일부'에 다른 종교의 '일부'보다 더 큰 비율, 더 큰 부정적 영향력, 더 많은 문제행동을 나타나게 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 더욱 건전한 생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 여기에 관해 달리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면 감히 의견을 청하고자 합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주류'의 문제죠, 그리고 교회사를 살펴봐도 거의 대부분 소위 '주류'에 의해 부정적인 문제들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류'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지극히 종교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주류'가 부정적인 문제까지 일으키는 것은 비단 기독교만의, 종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른 일반적인 현상에서도 여전히 '주류'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난의 강도를 높입니다.
이에 대한 제 생각은 사람들의 태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비중이 그만큼 높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무엇이든 거대화 되고 조직화가 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반대급부일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한가지만 들어보죠,
작년에 한참 촛불 집회가 고조될 때 많은 수구주의자들이, 특히 '노노데모'같은 카페에서는 촛불집회 현장의 부정적인 면을 증거사진이라며 일부 청소년들의 일탈들(술판을 벌이는 장면, 쓰레기를 모아 불을 붙이는 장면 등등...)을 공개하고 강도높게 비난했었습니다.
그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원래 청소년들에게 일탈을 조장하기 위해서는 분명 아닙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그런 혼잡함 혹은 거대함 속의 무관심을 틈타 일탈을 살짝 즐기는 청소년들도 분명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 모인 사람들의 그 근본적인 취지가 비난받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시는지요?
근본적으로 기독교를 안믿으면 그 말도안되는 태어날때부터 죄인 - 이라는 게 성립하지 않는다니까요?
아담가 이브같은 소리는 하덜 마세요 -.-
혈액형으로 유전하더라도 지은 죄는 아비죄지 그게 자식 죕니까? 그 밑에서 태어난 죄?
은근 개념있는글인듯 하면서도 곳곳에 기독교 관련된 개념이 베이스로 깔려있으니, 비신도입장에서 보면 그냥 어이없는 글이네요.
용기 없는 자식들 같으니 ㅋ
당신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스티븐 호킹의 빅뱅 이론에 대해 완전히 이해는 하십니까?
만약 제대로 이해가 안된다면 세상에다가 저건 순~ 거짓말이야~ 하고 소리칠 용의가 있으십니까?
원래 제 블로그는 아무나 와서 똥이나 싸지르고 가도 되는 블로그라 굳이 덧글 제한을 걸지는 않았습니다만, 혹시라도 뭔가 더 욕하고 싶으신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제는 자신을 떳떳하게 밝히시고 진득하게 저랑 토론을 해보십시다.
어떠십니까?
말씀하신대로 모든 종교는 절대성을 지니지요.
문제는 그것을 세상에 알리려고 할 때 세상과 충돌하게 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엄청난 자기성찰과 공부가 필요한데 그런 노력 없이는 오히려 일방적인 억지와 민폐가 될 뿐이지요.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면 먼저 남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엄혹한 자기성찰과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요.
다만 그렇게 공부하고 반성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많은 변화가 발생합니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학습과 성찰에 의한 변화를 타락과 이단으로 규정하고 무지와 맹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있겠지요.
이건 다른 종교에서도 있는 문제입니다만, 다른 곳에서는 이런 또라이 부류가 주류가 아닌 반면에 개신교는 '주류'거든요.
위에 댓글들에도 있지만 고민하고 공부하는 신앙인들을 쫓아내는 게 대한민국 주류교회의 현실 아니겠어요.
다른 종교는 전혀 문제 없습니까?
정치정당은 다릅니까?
학교법인은 또 어떻습니까?
조선시대 성리학의 당파논쟁은 별다른가요?
인간에 있어 권력에 대한 탐욕이란 바로 이런 한계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비슷한 수준의 비슷한 무게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굳이 제가 이런 글을 쓴 이유는 주류의 부정적인 모습이 보일지라도 어쨌거나 올바른 시각으로 세워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도 종교와 종교 공동체가 생긴 근본 취지를 비난할 마음은 없어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것, 보다 완전한 것을 찾거나, 거기에 기대고자 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 심리인데 이걸 부정한다면 종교 자체를 부정해야죠. 저는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도킨스처럼 종교가 허구라는 게 종교가 없어져야 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다만, 개신교가 유독 비난을 받는 이유에 개신교 자체는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하는 건 좀 공정함이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규모의 문제(이건 불교든 뭐든 피할 수 없죠)도, 사람들이 개신교에 부정적 편견을 갖고 있는 문제도 분명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히 큰 다른 종교에 비해서는 왜 이런가, 또 사람들이 맨 처음에는 왜 개신교를 비난하기 시작했을까를 생각한다면 이것만이 전부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군중을 기본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이 섞여 있는 백색광과 같이 랜덤한 존재로 본다면, 그들이 어떤 한 색깔을 띄는 데는 분명 그 환경, 즉 물로 치자면 그릇의 모양을 고려해야 원인, 결과, 대안을 적절히 밝힐 수 있겠지요.
예로 드신 집회시위의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규모의 문제나, 일부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도 물론 큰 요인이 되겠습니다만, 훨씬 클 수도 있는 다른 집단이나 군중에 비해 시위 집단에서 그러한 성향이 어느 정도 나타나는 것은 시위라는 방법 자체의 근본적 속성을 배제하고 설명하려면 무리가 따르지요. 상당한 익명성, 나쁜 시스템에 반대한다는 반항의식, 여기에 의해 항상 존재하는 혈기 넘치는 사람들에게 전체가 이끌릴 수 있는 분위기 등 일탈이 쉽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장소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사회적 구조를 보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권리가 법에 명시되어 있는 거겠지요.
개신교도 마찬가지로, 현대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해석되기 쉬운 전도에 대한 강한 권장이나, 유일신교 특유의 배타성과 자기완결성(이 둘은 이슬람교에서도 강하게 나타나지요), 사후세계와 신의 세계에 대한 믿음의 방식, 개신교 특유의 원리주의가 나타나기 쉬운 입장, 또 오히려 이에 의해 경전을 해석하는 방법을 달리하는 많은 종파의 등장 및 그들간의 경쟁 등(제가 생각하는 걸 대충 몇 가지 적어 놔서 동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신도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비교적 쉽게, 많이 나타나게끔 하는 여러 교리적, 내부적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 개신교 특유의 기복신앙, 배타적 집단주의, 일부 졸부적 속성을 제외하더라도 말이죠.
저는 이런 것 때문에 크리스트교가 사라져야 한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개신교의 부정적 모습에 대해 언급할 때, '일부'든 '주류'든 '내 주위의 신실한 사람이 아닌 악의적 타인'을 가정하고 그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하기보다는 크리스트교 자체의 한계와, 개신교의 속성에 그러한 문제점을 일으킬 요소가 내포되어 있음을 신자들이 한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나쁜 타인이 아닌 같은 교인이라는 것에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깊은 편견을 딛고 공감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러기를 기원합니다.
osado님 블로그에서 글이 너무 길었군요. 제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은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 )
지적하신 기독교의 문제에 대해 저역시 그렇지만 어느정도 기독교인들조차 비슷한 시각으로 고민하는 모습 또한 분명한 사실이고요...
많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이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부분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기독교가 세상에서 상대와 대화를 해야하는 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며 지금껏 달려왔던 이유도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교회를 나와보니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사람이 모여있는 곳은 언제나 문제가 있기 마련이겠지요. 물론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개신교의 행보는 다른 종교에 비해 훨씬 두드러져 보이구요. 유럽에서는 무슬림들이 늘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고, 머리에 뭐만 쓴 사람만 보면 거부감이 확 들 정도네요 ^^;
언젠가 고인 물은 썩는데, 지금이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실제 신이 계시다면 그 전에 한국에 좋은 지도자들이 나오고, 기독교인들의 각성운동을 통해서 개혁이 이루어지길 바래요. 세력을 넓히는데 골몰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이 교회안에 참 많다는 것 잘 알고 있거든요. 그 좋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길, 실망하지 않길, 전 그걸 바라고 있어요.
지금까지 기독교가 전해져오면서 쌓인 역사와 의미와 성과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몇가지 현상에 의해 간단하게 무너져내릴만큼 허약하지는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또한 밖에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끊임없이 이야기 하며... 이런 과정들을 통해 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지금 유학생활중이신걸로 아는데 부디 건강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면 안되는 것을 적은 목록을 가지고
그걸 어기면 연기와 불이 훨훨타고 고통스러운 고문이 가득한 특별한 장소로 보내버리는지"는
죽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거니
이건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 위의 인용문은 조지 칼린의 풍자쇼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
하지만, 죽기전에, 살아있는 동안, 영혼의 진리를 갈구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또한 종교적 사명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