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14일
이개론이 아니라 인개론
저님이 그렇게 사랑하는 전직 촛불소년소녀의 한마디 추가 또 한마디
김용민씨의 소위 '20대 개xx론'이 너무 뜨겁다.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위의 링크 글까지 읽으며 도데체 어디서부터 이 불편한 소리가 시작되었는지 고민마저 하고 싶을 정도다.
누군가 말한다.
20대 개xx론을 줄여 2개론이라며...
나는 이개론이 아닌 인개론이라 부르고 싶다.
인간은 모든 세대에 걸쳐 그렇게 여러 종자가 모인 집단이고 이것이 인간의 역사다.
나도 이제 40대가 되었다.
386세대의 턱걸이.
60년대 끝자락에 태어나 80년대 끝자락에 대학에 들어간 끝물 인생인 것이다.
내가 고3이었던 1987년, 학교 땡땡이 치고 시청으로 달려가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같이 외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나를 위해 기꺼이 거짓말 해준 반 친구들.
며칠 후, 거짓말같은 6.29 선언이 조선일보 1면을 장식한 조간 신문을 들고와 나에게 웃어주며 같이 환호해 준 친구들.
그러나, 이런 예는 좀 드물고 대부분은 오로지 대학걱정에 목을 메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금 20대의 10대시절은 정보 접근성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386세대의 10대시절 정치의식보다 수백배 우월하다.
선지원 후시험제의 첫 실험 세대가 또한 나였다.
졸업정원제로 대학문은 너무 좁은데 졸업문은 비교적 널널했던 시대.
소신지원했다가 보기좋게 낙방하고, 세상은 서울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흥분에 싸여 있는데 우리는 어두컴컴한 세월을 보냈던 재수시절.
지금의 20대가 386세대를 보며 응어리진 눈길을 보내는 것 또한 지난 내 20대를 보게 한다.
왜냐면, 나의 20대 역시 그 앞세대보다 훨씬 가혹했기 때문이다.
내 앞의 세대는 고등학교 졸업장만 온전히, 혹은 대략 쥐면 먹고 사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거든...
나는 20대를 사랑한다.
내 20대 시절을 사랑하고 20대를 지나온 사람도 사랑하며 지금의 20대와 앞으로 20대를 맞이할 모든 사람의 그 20대를 사랑한다.
그 때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대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절이다.
감상적으로 억지로 만들려해도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쟎아요.
내가 보낸 시절이었다.
이 비열한 명제는 그 전에도, 나의 지나온 세월에서도, 현재도, 앞으로도 계속 무한반복 되지 않는가.
개xx는 지금의 20대만이 짊어질 혹이 아니다.
지금 모든 세대에 걸쳐 이 개xx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작년, 시청앞에서 촛불들고 뛰쳐나간 어느날, 눈에 익은 깃발을 봤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그 깃발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하고 박수치며 기대를 건 눈길로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구국의 강철대오를 따라갔다....가 그만 다같이 길을 잃고 경찰의 교묘한 부비트랩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꼴을 당하고 말았다.
전대협뿐만 아니라 오월대, 녹두대 모두 나선들 지금의 단단한 차벽을 뚫을 수 있을까?
아무도 못뚫는다.
절대 뚫을 수 없다.
그들의 20대 때에는 그렇게 뚫을만한 시대였고 지금의 20대에게는 뚫을만한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
나의 20대에 이렇게 뚫었다고 지금의 20대에게 똑같은 주문을 하는 것은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행위다.
이것은 화염병과 촛불의 화력 차이가 결코 아닌 것이다.
스스로 진보주의자여,
왜 진보를 자처하며 해묵은 80년대 투쟁론을 30년지나 똑같이 울궈먹으려는가?
무게감이 다르고 가야할 길이 다르다.
이명박 정부를 향해 80년대로 회귀하는 것을 두 눈뜨고 못보는 이여, 왜 스스로는 80년대의 이념의 사슬에 얽매여 있는가?
이것은 진보가 아닌, 퇴보다.
80년대식 정권을 물먹이겠다고 80년대식 방법으로 맞대응 하는건 누군가의 말마따나 불쌍한 희생양만을 양산할 뿐이다.
386을 원망하는 20대여, 실컷 원망하라.
우리도 졸라 원망했다.
그러나, 당신들도 원망받을 사실쯤은 알테고,
결정적으로 이것이 인간의 역사 그 자체다.
후회없이 원망하고 후회없이 인생의 황금기, 그 20대를 충분하게 느끼고 즐기고 울분을 토해내며 소리치고 ... 모든것을 다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못하고 지나가면 그것보다 더 큰 후회는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것이고 다시 할 기회 역시 절대 없을 것이다.
지금의 20대여, 앞세대들 중에 당신들을 향해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음을 잊지 말기만을 바란다.
후세대들중에 또한 당신들을 향해 선망의 눈길로 보는 사람 역시 엄연히 있음 또한 꼭 알기 바란다.
20대는 그만큼 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시절이다.
osado
김용민씨의 소위 '20대 개xx론'이 너무 뜨겁다.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위의 링크 글까지 읽으며 도데체 어디서부터 이 불편한 소리가 시작되었는지 고민마저 하고 싶을 정도다.
누군가 말한다.
20대 개xx론을 줄여 2개론이라며...
나는 이개론이 아닌 인개론이라 부르고 싶다.
인간은 모든 세대에 걸쳐 그렇게 여러 종자가 모인 집단이고 이것이 인간의 역사다.
나도 이제 40대가 되었다.
386세대의 턱걸이.
60년대 끝자락에 태어나 80년대 끝자락에 대학에 들어간 끝물 인생인 것이다.
내가 고3이었던 1987년, 학교 땡땡이 치고 시청으로 달려가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같이 외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나를 위해 기꺼이 거짓말 해준 반 친구들.
며칠 후, 거짓말같은 6.29 선언이 조선일보 1면을 장식한 조간 신문을 들고와 나에게 웃어주며 같이 환호해 준 친구들.
그러나, 이런 예는 좀 드물고 대부분은 오로지 대학걱정에 목을 메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금 20대의 10대시절은 정보 접근성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386세대의 10대시절 정치의식보다 수백배 우월하다.
선지원 후시험제의 첫 실험 세대가 또한 나였다.
졸업정원제로 대학문은 너무 좁은데 졸업문은 비교적 널널했던 시대.
소신지원했다가 보기좋게 낙방하고, 세상은 서울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흥분에 싸여 있는데 우리는 어두컴컴한 세월을 보냈던 재수시절.
지금의 20대가 386세대를 보며 응어리진 눈길을 보내는 것 또한 지난 내 20대를 보게 한다.
왜냐면, 나의 20대 역시 그 앞세대보다 훨씬 가혹했기 때문이다.
내 앞의 세대는 고등학교 졸업장만 온전히, 혹은 대략 쥐면 먹고 사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거든...
나는 20대를 사랑한다.
내 20대 시절을 사랑하고 20대를 지나온 사람도 사랑하며 지금의 20대와 앞으로 20대를 맞이할 모든 사람의 그 20대를 사랑한다.
그 때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0대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절이다.
감상적으로 억지로 만들려해도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쟎아요.
내가 보낸 시절이었다.
이 비열한 명제는 그 전에도, 나의 지나온 세월에서도, 현재도, 앞으로도 계속 무한반복 되지 않는가.
개xx는 지금의 20대만이 짊어질 혹이 아니다.
지금 모든 세대에 걸쳐 이 개xx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작년, 시청앞에서 촛불들고 뛰쳐나간 어느날, 눈에 익은 깃발을 봤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그 깃발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하고 박수치며 기대를 건 눈길로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구국의 강철대오를 따라갔다....가 그만 다같이 길을 잃고 경찰의 교묘한 부비트랩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꼴을 당하고 말았다.
전대협뿐만 아니라 오월대, 녹두대 모두 나선들 지금의 단단한 차벽을 뚫을 수 있을까?
아무도 못뚫는다.
절대 뚫을 수 없다.
그들의 20대 때에는 그렇게 뚫을만한 시대였고 지금의 20대에게는 뚫을만한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
나의 20대에 이렇게 뚫었다고 지금의 20대에게 똑같은 주문을 하는 것은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행위다.
이것은 화염병과 촛불의 화력 차이가 결코 아닌 것이다.
스스로 진보주의자여,
왜 진보를 자처하며 해묵은 80년대 투쟁론을 30년지나 똑같이 울궈먹으려는가?
무게감이 다르고 가야할 길이 다르다.
이명박 정부를 향해 80년대로 회귀하는 것을 두 눈뜨고 못보는 이여, 왜 스스로는 80년대의 이념의 사슬에 얽매여 있는가?
이것은 진보가 아닌, 퇴보다.
80년대식 정권을 물먹이겠다고 80년대식 방법으로 맞대응 하는건 누군가의 말마따나 불쌍한 희생양만을 양산할 뿐이다.
386을 원망하는 20대여, 실컷 원망하라.
우리도 졸라 원망했다.
그러나, 당신들도 원망받을 사실쯤은 알테고,
결정적으로 이것이 인간의 역사 그 자체다.
후회없이 원망하고 후회없이 인생의 황금기, 그 20대를 충분하게 느끼고 즐기고 울분을 토해내며 소리치고 ... 모든것을 다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못하고 지나가면 그것보다 더 큰 후회는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것이고 다시 할 기회 역시 절대 없을 것이다.
지금의 20대여, 앞세대들 중에 당신들을 향해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음을 잊지 말기만을 바란다.
후세대들중에 또한 당신들을 향해 선망의 눈길로 보는 사람 역시 엄연히 있음 또한 꼭 알기 바란다.
20대는 그만큼 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시절이다.
osado
# by | 2009/06/14 00:39 | 살며 사랑하며 | 트랙백(1)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얼치기 진보의 빗나간 20대 저주론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김용민, 충대신문 2009 김용민씨의 훈계에 어느 정도의 진정성이 녹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래전 홍세화가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이라며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훈계했을 때조차, "너희는 안된다. 뭘해도 늦었기 때문이다"라는 비관적 태도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홍세화는 대학생들이 무식해진 연유를 '국가에 의한 제도교육'과 '자본에 의한 대중매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았다. 홍세화는 탄식했을지언정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more
참으로 공허하게 느껴지는 말장난이네요.
민중봉기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주체사상의 수령관을 아직도 그대로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가요?
예 아직도 있겠지요. 극소수이겠지만요.
얼마전까지,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떠받들여지는 신자유주의 이념은 몇십년을 묵은 이념인지는 알고 계시나요?
아니 시장만능주의와 자유무역주의 따위의 뿌리를 더듬어 가다보면 몇 백년은 더 묵은 이념들이지요.
화염병을 던져 차벽을 뚫은 것이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일이라고요?
그럼 몇 년전 프랑스 대학생들이 최초고용법에 저항하여 프랑스 전역을 화염병으로 뒤덮은 소요사태는 참으로 크나큰 역사의 퇴보였겠군요.
그에 굴복하여 법안을 철회하여 직업안정성을 높여준 프랑스 정부는 또 뭐가 되는 건가요?
시대가 변했다... 더이상 구시대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예 물론 변했지요.
그러나, 정말로 뭐가 변했고 뭐가 변하지 않았는지,
정말로 어떤 방법이 유효하고 어떤 방법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건지
얼마나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시고서 그런 말들을 내뱉으시는지...
참으로 공허한 말들이 덧없이 대한민국에 떠돌고 있다는 생각뿐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케인즈의 부작용에 찌들었을 때 대안으로써 대두되었던 이론입니다. 신자유주의또한 대두 당시에는 병신으로 불렸습니다. 주류라는 코스를 타기까지 그리 선선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경제학을 경멸합니다만...)
그리고 글쓴이는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화염병보다 더 나은 상상력을 지금의 20대가 가지는 것, 그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그들 자신의 방법으로 가지는 것은 20대인 저로써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386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운동하고 변화시킨 뒤, 민주화를 성립 시킨 뒤에 그들이 그것을 지키는 데 언제나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망만을 보여주는 것을 언제나 보아온 세대입니다.
화염병은 그저 바꾸는 방법일 뿐입니다. 지키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지키는 방법입니다.
당신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그럴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그것 아닙니까? 지키는 것? 그 운동을 만들어낸 잘나빠진 민주주의라는 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 말입니다.
동갑일 듯한 '아우님과 애들 친 (외)삼촌'이 비슷하게 가슴 뭉클한 소리를 하는구먼.
정작 회초리(?)를 맞은 20대 우리 딸은 그분의 글을 읽어보더니 맞는 말이라며, 20대로서 가슴아프다하네.
원로세대든, 386이든, 변** 세대든, 88만원 세대든, 그 밑의 20대와 10대후반이든, 어디나 억울한 사람이 있을 테고,
저렇게들 서로 광분할 필요가 무에 있겄나... 서로의 언중에 취할 건 취하고, 반성할 건 하고 그래야 하는건데,
그리고 함께 손 잡고 힘모아 거꾸로 가는 이 세상을 최소한 제자리 걸음이라도 하게 돌려 세워야 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기만이라도 하면 현기증 가라앉는 언젠가는 앞으로 걸을 게 아니겠나... 답답하기만 하이...
정작 비판 받고 단죄받아야 할 대상은 저 편에 놔두고 우리끼리 삿대질 하고 있으니 말일세.
우연히 홍길동전 얘기가 나와서 상대녀에게 원작자 얘기를 건넸더니...제 옆에 앉아있던 넘이 그러더군요.
"고우영아냐?"
온갖 사상서에 파묻혀지내던 넘들도 있었고 온갖 연예기사 줄줄이 꿰던 넘들도 있었죠.
어딜가나 그런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게 세상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