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


[타잔 - TARZAN]- 진부함을 넘어선 수작


헐리웃에서만 47번이나 영화화된 영화사상 가장 진부한 소재, 타잔.

1990년대 후반에 들어 워너 브러더스와 드림 웍스의 라이벌 공세에 시달리던,
필름 애니메이션계의 독보적인 성을 쌓아왔던 월트 디즈니가
세기말, 마지막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내 놓은 히든 카드가 기껏 "타잔"이었다.

헐리웃에서 영화화된 역대 타잔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타잔이 있다면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했던 와이즈뮬러였다.

그가 처음 영화 제작자를 만나 타잔 제의를 받았을 때는
많은 고민을 했으나 당시 헐리웃의 황제였던 클라크 게이블(그 당시의
미국에서는 대통령보다 이 헐리웃의 황제를 만나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을 만나
같이 점심 식사를 한 후에야 비로소 출연 제의를 수락했으며
역대 타잔 영화 중 최고의 인기와 흥행을 기록했었다.

그 후로 또 역시 많은 타잔이 영화화 되고 등장했으며
TV시리즈까지 제작되어 1970년대에 우리 나라에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 월트 디즈니가
20세기의 끝자락에서 그 타잔을 부활시킨 것이다.

우선 이 타잔은 소재는 진부하지만
작품은 전혀 진부하지 않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1980년대 후반 월트 디즈니를 끝없는 추락으로 떨어뜨린 저주받은 걸작,
"검은 솥"이후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몇 년 간이나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어린이뿐만 아니라
20대 젊은이들까지 아우르는,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각적 전환점이 될 작품,
"인어공주"의 등장으로 기사회생하게 되며
헐리웃의 6대 메이저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그 후로도 계속 매년 여름방학 시즌 마다 힛트작을 내며
필름 애니메이션계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이렇게 10년을 지나오는 동안 꽤 많은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진부해져 가는 월트 디즈니로서는
어쩌면 이 "타잔"이야말로 20세기를 장식할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이다.

우선 타잔은 월트 디즈니의 90년대 작품 중,
함량 미달의 "미녀와 야수"나
관점에 따라서는 키치적으로까지 비쳐진 "헤라클레스",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을 던져주는 "알라딘"에 비하면 월등히 나아 보인다.

그리고 월트 디즈니를 새로 일으킨 "인어공주"나
빅토르 위고의 작품성에 흠집을 낸 비난을 면치 못한
"노틀담의 꼽추"에 비하면 작품성도 발전했다.

휴먼 드라마로서 가장 진지한 면모를 보여준 "포카혼타스"와
동양에 대한 경외감으로 헌정된 "뮬란"의 연장선에서
"타잔"은 분명 인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불만스러운 단점으로써는 무리의 우두머리,
그 우두머리의 교체식, 새로운 시작...
이 모든 요소는 월트 디즈니 최고의 흥행작인
"라이언 킹"의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진부함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역시 장점은 많은 작품이다.

우선 눈에 띄게 놀라운 점은 역동적인 카메라 웍크다.

도저히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촬영기법은
일반 영화로써도 쉽게 흉내내지 못할 동선임에는 틀림없다.

마치 스릴만점의 롤러코스터를 러닝타임 88분 내내 타면서도
긴장과 여유 사이에 알맞은 호흡으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나가는 평범함을 벗어나는
뛰어난 연출과 함께 90년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최고라 할만하다.

그리고 3D로 제작된 배경과 2D 셀 캐릭터의 어색하지 않은 조화 역시
만화영화로써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일반 영화 못지 않은
현장감과 사실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 이 작품만의 장점이다.

또한 마크 맨시나의 감각적인 음악과 어우러진
필 콜린스의 감미롭고도 아름다운 노래들은
기존의 월트 디즈니의 음악과 차별을 두고 있다.

기존의 작품에서 노래들은 전부 등장 캐릭터들의 대사였으나
이 작품에서 노래들은 전부 줄거리를 밝혀주는
나래이션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필 콜린스의 영입은 대단한 성과라 하겠다.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인 "제네시스"를 이끌며
그가 20년 이상 추구해온 음악적 성과들은
절대 간과 할 수 없는 미국 록 음악의 자부심과도 같기 때문이다.

아마도 "라이언 킹"에서 처럼 영국인인 엘튼 존을 영입했다면
작품 밑바닥에 면면히 흐르는 주제 의식과는 약간 비켜갔을테니 말이다.

다분히 가정적이고 사회적인 고릴라의 대사들은 밝은 미국식 영어로,
파괴적이지만 혁명적인 인간들의 대사는 우아한 영국식 영어로 처리한
그 바닥의 주제의식을 아마도 필 콜린스 만큼
잘 표현할 싱어 송 라이터도 드물 것이다.

분명 이 타잔을 보면서 기억할 것은
이 작품은 철저히 미국인의 손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작품은 그래도 높이 쳐 줄 만하다.

왜냐면 단지 미국의 이념이 들어간
다른 헐리웃 영화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인간의 순수한 감성에 더 비중을 두고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타잔이 자기는 왜 고릴라 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는지 고민하며
엄마 고릴라와 손바닥을 맞대는 장면 후에
한 인간을 만나고 그 인간을 보며 자기를 발견하면서
그와 손바닥을 맞대고 그 인간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 타잔은 한 마리의 고릴라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비로소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 정체성을 바로 잡은 후에
고릴라 사회의 리더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타잔이 진부함을 벗어 버린 이유는
이 극적인 시퀀스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이다.

원래 이 장면은 노먼 주이슨 감독의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 스타'에 처음 나온다.

비싼 향유를 예수께 바르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난하는
가룟 유다에게 예수께서 그러지 말라고 책망하신 후에
고개를 떨군 유다를 어루만지며 그의 손을 잡아주는 시퀀스이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는 "Everything's All Right".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발견한 유다에게 구원의 손길이 미쳤듯이
고릴라와 인간의 정체성의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을 뻔한 타잔에게 구원의 손길이 미치는 순간인 것이다.

만약 이 작품이 실사 영화였고
다른 주제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면
남의 연출을 베낀 진부함에 그칠 것이겠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비인간성으로부터
인간을 추구한 이례성을 보인 것이다.

그러한 요소가 바로 이 작품을 진부함에서 탈피시킨 중요한 이유라 하겠다.

기술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진일보한 면들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며
작품성에 제대로 녹아 들어 갔다고 평가받을만 하다.


osado

by osado | 2003/12/09 09:43 | 삶은 현재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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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ete2003 at 2003/12/09 15:03
타잔이라 아직 못본 디즈니 작품중 하나..
ㅠㅠ
Commented by 정치영 at 2004/09/18 16:17
타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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